비운의 도시 폼페이(Pompei)

폼페이는 이탈리아 반도 중서부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다시피 79년 8월에 발생한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순식간에 2~3m의 화산재가 뒤 덮여 사라져 버린 비운의 도시입니다. 로마에서 차를 타고 3시간 가까이 남쪽으로 달리면 폼페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폼페이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어려운 이탈리아 말이라 무슨 뜻인지… 했는데, 바로 아래에 영어로 써 놓았네요. “폐허로 들어가는 입구”]

 

[입구로 들어가면 약간 가파른 언덕이 나옵니다. 그 언덕을 넘어서면 곧 바로 이렇게 넓게 펼쳐진 광장이 나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멀쩡한 건물이 없습니다. 멀리 뒤로 이 도시를 집어 삼킨 베수비오 화산이 보이네요. 베수비오는 아직도 사화산은 아니고 휴화산이랍니다. 그러니까 언제든 다시 폭발 할 수 있다는  이야기]

 

[조금 더 가까이서 잡아보니 산이 위협적이기는 합니다. 산이 저렇게 먼데 그 화산 폭발과 화산재가 이 도시를 덮치다니…… 자연의 힘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입니다]

 

[도처에 널려있는 붕괴된 흔적들. 지금은 그저 돌 무더기처럼 보일지라도 그 당시에는 누군가의 별장이었을 것입니다. 폼페이의 인구는 2만에서 5만까지 유동적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 지역이 별장 지역으로 유명했기에 전형적인 휴양지의 인구변화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휴양철이 되면 인구가 늘었다가 평상시에는 토착 거주하는 사람들만 남았기 때문이지요]

 

[폼페이는 15세기까지만 해도 그저 화산 속에 파 묻힌 잊혀진 도시였습니다. 그러니까 무려 1,4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화산재에 파 묻혀 있었던 것이지요. 15세기부터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지금도 발굴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시 폭발의 모습은 나폴리의 해군 제독이었던 플리니우스에 의해 상세하게 기록되었으며, 그 후로 베수비오 화산 폭발과 같은 유형의 폭발을 그의 이름을 따 플리니우스 분출이라고 합니다]

 

[당시 폼페이는 많은 유동인구와 상업력을 바탕으로 번성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폭이 3미터쯤 되는 이런 대로들이 나 있었으니 그 번영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사진에도 나와 있지만, 인도와 차도를 엄격히 구분해서 도시를 설계하였습니다]

 

[차도 가운데 불쑥 이런 식으로 돌들이 놓여 있습니다. 진입 방지턱입니다. 무엇을 진입 방지하냐고요? 허가 받지 않은 상인들의 마차가 다닐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이 돌 세개를 놓음으로서 폼페이의 상인들은 외부 상인들을 배격하고 자신들만의 시장을 독점적으로 형성했으며 관리들은 한결 수월하게 세금을 걷었을 것입니다. 또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과속 방지턱의 역할도 했을터이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상가와 주택을 구별 할 수 있는 사진입니다. 입구가 각각 나 있는데 하나는 입구 댓돌에 홈이 없고 하나는 홈이 있습니다. 홈이 없는 것은 주택의 입구입니다. 이 댓돌 안쪽에 대문이 있습니다. 홈이 나 있는 것은 요즘 말로 하면 셔터를 내렸을때 딱 들어 맞는 홈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그 당시에 셔터라는 것을 사용했나 봅니다]

 

[인구는 2만~5만 정도였으나 화산 폭발로 인해서 실제로 희생된 사람의 수는 약 2천명 정도라고 합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았다시피 베수비오 화산은  폼페이에서 다소 떨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충분히 피신 할 시간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러나 피신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래와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실제 사람에게 화산재가 덮인 모습입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앉은 자세에서 호흡이 곤란한지 코를 틀어쥐고 그대로 죽어갔습니다. 왜 이 사람들은 피신하지 못 했을까요? 피신하지 못 했던 이유는 워낙 폭발의 규모가 크고 순식간이라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어 태양을 가려서 세상 천지가 암흑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또는 피신하지 못 한 것이 아니라 피신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16년 전인 63년 2월에도 대지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도 크고 작은 분출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러한 잦은 분출에 면역이 생겼을 것이고 “설마”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피신을 가고 나면 도시는 일순간 무법천지가 됩니다. 피신하는 사람들이 이것저것 모두를 챙겨 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사람들이 떠난 부유한 도시는 일거에 일확천금을 획득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도 혹시 부자들이 몸조심 하는 사이를 틈 타 일확천금을 노렸던 것은 아닐까요? ]

 

[부유한 휴양지에서는 유락 시설이 꽃을 피우게 마련, 폼페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 골목은 사창가였습니다. 매춘의 역사가 인간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라는 말도 있다더니… 골목 오른쪽에 하얀 팻 말이 붙어있는 집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지금 시각으로 보자면 마치 토굴같은 분위기입니다. 아래 쪽에 보이는 것이 침상입니다. 조명도 없어서 셔터 속도를 확보하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각 방의 입구 위에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벽화는 다양한 체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사람들은 먼저 체위를 고른 다음 그 해당하는 방으로 갔다나요? 그럼 그 방에서는 그 체위 말고는 불가?]

 

[휴양 도시에 당연히 공연장이 빠질 수 없지요.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도 아주 훌륭한 야외 공연장입니다. 규모도 상당합니다]

 

[무대를 중심으로 반원형의 모양입니다. 이 정도면 일반적인 무대 예술에서 마당극까지 소화 할 수 있는 훌륭한 시설입니다. 무대가 아래쪽으로 푹 꺼진 이러한 설계는 마이크나 앰프가 없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이 큰 공연장에서 출연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최선의 설계였을 것입니다]

 

[반원형 극장의 바로 뒤쪽으로는 검투사들의 수련장이 있습니다. 축구장 크기의 절반 쯤 되어 보입니다]

 

[검투사 수련장 한쪽에 마련된 검투사들의 숙소. 이 정도면 말이 숙소이지 거의 감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검투사들은 이 곳에 기거하며 죽음을 맞는 그 순간까지 상대방과 싸웠을 것입니다]

 

제가 폼페이를 찾아 간 날은 지중해의 햇살이 지독히도 강한 오전 시간대였습니다.

강한 햇살 때문인지, 눈 앞에 펼쳐지는 폐허 때문인지 시간은 정지된 듯 했고 그 때문에 폐허는 더욱 더 몽환적으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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